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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제 저녁에 안좋은 소식이 있었다. 여행 전에 예약했던 베나길 보트투어가 날씨 문제로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겨울에는 파도가 높고 날씨가 안좋을 때가 많아 베나길 보트투어를 진행 하는 업체가 애초에 많이 없고, 예약을 하더라도 날씨 때문에 취소가 되는 일이 많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일기예보를 미리 확인해봤을 때 투어를 예약한 날에 날씨가 좋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조금 청천벽력 같았다.

그래도 어느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던 일 이었기 때문에 크게 상심하지는 않았고 아침에 일어나서 날씨가 좋으면 보트투어 대신 해안가 절벽 트래킹을 하기로 하고 잠에 들었었다.

그리고 이 날도 역시나 새벽 5시쯤 일찍 눈이 떠져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는데.. 날씨가 꽤 좋은걸...?

오늘도 역시나 파란 하늘을 보고 흥분해서 빨리 준비해서 나가기로 하고 아침 산책을 급하게 마무리하고 숙소로 다시 들어왔다.

아침으로는 능길이가 어제 먹다 남은 고기로 볶음밥을 해줬고 기분 좋은 날씨에 조식부터 맥주도 함께 곁들였다. 준비 다하고 괜히 기분 좋아서 테라스에서 사진도 남겨보고... 이렇게 보니 나는 날씨가 정말 중요한 사람이었구나..! 다음 여행지는 꼭 날씨가 좋을 때 가야겠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좋다보니 갑자기 취소된 보트투어에 미련이 남았다. 아니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왜 취소된거야...

그래서 혹시나 항구쪽으로 나가보면 보트투어하는 업체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품으며 집을 나섰다. 

숙소가 있는 동네에서 항구쪽으로 길을 꺾자마자 나온 뷰. 안가봤지만 왠지 캘리포니아...?

둘다 너무 갑작스러운 풍경에 할말을 잃으며 가까이 가보았는데 굉장히 비싸보이는 리조트였다. 

비싼 리조트라 그런지 요트가 엄청나게 정박해있었고.. 아무튼 신기한 풍경도 보고 왠지 요트를 보니 보트투어 업체도 곧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벌써 마음이 신나서 이미 숙소에서 한 20분 가량 걸어왔지만 힘든지도 모르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렇지만 이 비싼 리조트는 아주아주 커서 아무리 가도 끝이 안보이고.. 아무도 없는 큰 도로가가 나오는가 하면 한참을 걷다가 지도를 확인해보니 군사지역에 와있고..ㅠ 투어 업체는 커녕 아주 가끔 조깅하는 사람들을 만날 뿐 이었다. 그래도 좀 더 걸어가다보니 동네같은 동네가 나오고 여기는 진짜 있겠다! 싶었는데 도무지 안보여서 이미 아침 일찍부터 체력을 소진한 채로 보트투어는 포기하기로 했다.

원래 계획대로 절벽 트래킹을 하기 위해 택시를 불렀고 이렇게 많이 걸어왔는데도 베나길 동굴은 차를 타고 30분은 더 가야하는 곳 이었다. 베나길 동굴은 차로 갈 수 없고 내려서 걸어가야한다는 블로그 글을 보고 베나길 비치를 목적지로 찍고 갔다. 이때 약간 더운날씨에 걷다보니 둘다 지치고 힘들어서 택시에서 말을 거의 안했던 것 같다.. ㅋㅋㅋ

베나길 비치에 도착해보니 해안가 위에 보트가 몇개 보였다. 투어 부스같은 곳도 있어서 보니 역시나 운영을 안한다고 써있었다. 베나길에서 바로 출발하는 투어는 여기서 출발하나보다, 겨울에는 이쪽 파도가 너무 높아서 여기서 먼 포르티망 지역에서 보트를 타고 나가야한다고 한다. 이미 알아봤던 내용이라 업체도 포르티망으로 예약하고 숙소도 거기로 잡은건데! 

역시나 해안가로 나가보니 파도가 장난 아니었다. 해안가가 작다보니 파도가 더 크게 느껴졌다.

그래도 날씨 좋고 멋있어서 해변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베나길 동굴을 보기 위해 절벽 위로 올라갔다. 이것도 블로그에서 본 루트대로 갔는데 표지판 같은게 없어서 생각보다 찾기 어려웠다. 

오오.. 이게 베나길 동굴...

날씨 좋을 때는 보트를 타고 저 아래 입구로 들어와 동굴 안에 내려서 사진도 찍고 놀 수 있다고 하는데 비수기에는 날씨가 좋아도 이 안까지는 못들어온다고 한다. 역시나 딱봐도 파도가 너무 쎄서 엄두도 안난다... 

하필 이때 가져간 카메라도 뭔가 문제가 있어서 저 더 안에까지 찍고 싶었는데 못찍어서 능길이가 약간 시무룩 해졌었다 ㅜㅜ 이때부터 날씨도 살짝 안좋아졌다. 구름이 몰려오고 있어서 얼른 트래킹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 지역의 절벽은 해안가따라 쭉 있기 때문에 어디로 걷든 상관이 없지만, 내 생각에는 (숙소) <-- (베나길)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택시타고 집가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능길이는 숙소 반대방향인 (베나길) --> (또 다른 해변) 방향을 주장했다. 처음 생각과 다른 방향이었지만 구글맵에 뷰포인트들은 따로 카메라 아이콘으로 표시가 되어있는데 능길이가 주장한 방향에 엄청 멋있어 보이는 곳이 있어서 능길이 말을 따르기로 했다.

구름이 밀려온다...

트래킹 코스를 미리 알아보고 간 것이 아니라서 몇 걸음 뗄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절벽 풍경이 너무 재밌었다. 사람도 거의 없어서 중간중간 사진도 많이 찍었다.

사진 찍으면서 쉬엄쉬엄 가니까 별로 힘들지도 않고 마냥 즐거웠다.

딱히 경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닥도 울퉁불퉁하긴 하지만 그렇게 걷기 힘들진 않았는데, 날씨가 꽤 더워서 가져온 겉옷이 너무 거추장 스러웠다. 계속 팔에 들고다니는 것도 너무 더워서 가방에 둘둘 감아서 다녔더니 엄청 간편하고 신세계였다..! 남부지역은 확실히 덥다더니 역시 기온이 다르다.

길을 가다보면 아까 처음 본 베나길 동굴처럼 생긴 작은 동굴들이 많이 보였다. 저렇게 울타리가 쳐져 있는 곳은 다 동굴인 것 같았다. 매우 허술한 울타리...

그러다가 만난 뷰 포인트...! 너무 멋져서 능길이는 박수까지 쳤다. 눈으로 보는 것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영상으로 남겨놓으니 사진보다는 좀 더 생생한 느낌이 나서 좋다 ㅎㅎ

요게 유명하다고 한다

멋진 풍경에 또 신나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삼각대가 없어서 수풀 위에 핸드폰을 세워서 커플사진도 남겨보았다ㅋ.ㅋ

그런데 이때부터 빗방울이 한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간도 마침 점심시간 즈음이라 이제 그만 걷고 밥먹으러 가볼까? 하고 지도를 켰는데 너무 절벽 한복판이라 가게들이 있는 동네로 가려면 택시를 타고 나가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도로도 근처에 없어서 도로까지 좀 더 걸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걸어갈 수록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지더니 그냥 맞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분명히 가방에 우산도 있는데 거의다 젖고 나서야 우산의 존재를 깨달아서 얼른 우산을 펴서 뛰어가는데 바람까지 휘몰아쳐서 우산이 뒤집어지고 능길이 선글라스는 떨어트려서 렌즈 분리되고 완전 혼돈의 카오스였다. 사진에서 보이듯이 절벽쪽엔 나무가 하나도 없고 다 수풀 뿐이라 비 피할 곳도 없고 오로지 도로를 향해 달리는 방법 밖에 없었다. 도로가 보일 쯤에 빗줄기는 더 굵어져서 막 달려 나가는데 도로로 나가서 눈을 돌려보니 바로 오른쪽에 푸드트럭? 같은 것이 있었다. 

그 곳에는 손님 몇명이 비를 피하고 있었고 그 분들도 우리를 보며 얼른 여기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그렇게 달려서 들어가자마자 비가 후두두두두두 하고 더 쎄게 쏟아졌고, 다같이 이 상황에 깔깔깔 웃었다. 이미 쫄딱 젖은 나를 보며 중년의 여성분이 어떡해... 하는 표정으로 안쓰럽게 쳐다보시며 걱정해주시기도 했다. 잠시 소나기가 지나갈때까지 비도 피할겸 맥주 한병씩 시켜서 먹는데 이 상황이 너무 어이없고 재밌고 웃겨서 서로 사진 한장씩 찍어주었다 ㅋㅋㅋ 

힘들땐 웃자...!

이미 비를 많이 맞긴했지만 진짜 여기서 이 푸드트럭을 만난게 얼마나 다행인지... 저 앞에 작은 오솔길에서 우리가 뛰어왔던 것 같은데 이 시점에서 보니 매우 웃겼을 것 같다 ㅋㅋㅋ

역시나 소나기는 맥주 한병을 다 먹을 때쯤 그쳤고 함께 비를 피하던 다른 일행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그분들은 차를 타고 떠나셨다... 알고 보니 바로 앞이 주차장이었고 우리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들 차타고 트래킹코스에 오는 것 같았다. 

옷이 다 젖어 바로 택시를 불러서 타기에도 너무 민폐같고 조금만 걸어가면 곧 오픈하는 식당이 있는 것 같아서 우리도 푸드트럭 사장님께 감사인사를 전하고 다들 떠난 길을 따라 걸어서 가보았다. 

그렇게 10분 정도 걸어가자 식당이 나왔고 물에 젖은 생쥐꼴인 우리를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걱정했지만 매우 친절하게 맞이해주시며 벽난로 앞 테이블로 안내해주셨다... 쏘스윗...ㅠㅠ

벽난로 앞에서 옷도 말리고 몸도 말리고 있으니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육회를 다른 나라에서도 먹는지 몰랐는데 육회 비슷한 음식을 에피타이저로 시켰고 능길이는 먹어보더니 꼭 한국가서 이거랑 비슷하게 만들어보고 싶다고 할 정도로 맛있었다. 우리나라 육회와 다르게 좀더 다져서 상큼한 샐러드처럼 먹는 느낌이었다. 

012

그리고 대박 오징어튀김을 여기서 만났다. 별 기대없이 시켰는데 오징어튀김이 너무 부드럽고 맛있어서 먹자마자 깜짝 놀랐다. 이날 이후로 그렇게 오징어튀김을 찾아다녔다 ㅋㅋㅋ 일반 오징어튀김이 아니라 여기서는 갑오징어로 만드는데 choco frito 라는 이름으로 흔하게 파는 음식이었다(이름은 나중에 리스본에서 투어 가이드님이 알려주셨다!).

분위기도 좋은데 친절하고 음식까지 맛있어서 완전 만족스러운 마음에 나와서 식당 이름까지 사진으로 찍어서 남겨놨다 ㅋㅋ 나중에 또 올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물어본다면 꼭 추천해줘야지

밥을 다 먹고 나오니 옷이 거의다 말라있었다. 이정도면 택시를 타도 될 것 같아서 볼트를 불러서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서 씻고 조금 쉬다보니 비도 다 그치고 하늘도 점점 파래져서 다시 날씨가 좋아지는 것 같았다. 일찍부터 움직여서 뭔가 하루를 다 쓴 느낌이지만 아직 해도 지기 전이라 부지런히 마트에 가서 석양보며 먹을 맥주를 사고 석양 포인트를 찾으러 숙소 앞 해안가로 나갔다. 안가본 곳까지 쭉쭉 걸어가보니 오 여기다..!

뭔가 딱 해안가를 바라보며 앉을 수 있는 큰 바위가 있어서 저기에 앉아서 석양을 보기로 했다.

바위에 앉으니 발 밑으로 파도가 엄청 치지만 절대 발까지 올라오지는 않는 이 적절한 높이...!! 아주 만족스럽게 자리를 잡고 아무도 없는 이 해변에서 여유를 만끽했다.

그리고 진짜 잘한일... 영상으로 석양지는 배경으로 우리 뒷모습을 남겨놓았다.

우리가 직접 찾은 뷰포인트라 더 의미있고 여유로웠던 저때 기분이 생각나서 엄청 긴 동영상이지만 자꾸만 보게된다. 어떻게든 블로그에 올려보겠다고 빨리감기로 편집하는 방법도 찾아서 해보았다. 점점 해가 질 수록 구름도 많아져서 완벽한 석양은 아니었지만 나한테는 완전완전 완벽한 시간이었다.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만 뷰포인트 근처에 내가 며칠전에 찜콩해둔 식당이 하나 있어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새우커리가 맛있어보여서...

진짜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이 생긴 동네에 덩그러니 있는 느낌 이었는데(캄캄해서 그랬을지도..!) 식당 내부에는 손님들로 꽉 차있었다. 여기서 오늘 고생했다며 맥주도 먹고 기대했던 새우커리와 대구요리를 시켜서 먹었다. 역시나 맛있었다 ㅜㅜ

이렇게 또 하루가 끝날 줄 알았지만, 오는 길에 다시한번 비 폭탄을 맞았다. 식당을 나서려니 사람들이 다들 테라스에서 안나가고 서있었고, 밖을 보니 비가 대차게 내리고 있었다. 조금 잠잠해질 쯤 다들 나가길래 우리도 같이 나갔는데 우산이 있긴했지만 작은 우산으로 둘을 다 커버하기엔 빗줄기가 점점 강해졌다. 그래도 자라에서 샀던 패딩이 약간 방수? 기능이 있는지 옷이 젖지를 않아서 생각보다는 쾌적하게 집에 들어왔다.

이정도면 자라에서 나는 신이 들린 쇼핑을 한 것이 아닐까.. 왜이렇게 잘샀대...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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