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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은 한국과 시차가 9시간이나 나기 때문에 시차적응이 힘들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우리는 크게 힘들지는 않았고 대신 새벽 5시쯤 한번씩 깨기는 했다.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새벽 4시쯤 눈이 떠졌고 눈이 떠지자마자 수하물 조회를 해봤다. 

캐리어를 찾았고 내일 8시에 배송 예정이라는 내용이 있었고 기쁨도 잠시, 걱정이 밀려왔다. 왜냐하면 내일은 숙소를 이동해야 하는 날이라 예상 도착 시간보다 늦어지면 캐리어를 못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캐리어를 찾았다는 연락이 오면 공항으로 직접 찾으러 갈 계획이었으나 캐리어를 찾으면 연락준다는 말과 달리 메일도 문자도 오지않았었고, 분실신고 했을때 받은 고객센터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보려고하니 8시부터 영업시간이라 당장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8시까지 뜬눈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가 8시에 고객센터로 전화를 했다. 이 날이 하필 일요일이었는데 주말이라 고객센터 운영을 안한다는 자동응답기만 연결되고 전화가 끊겼다. 그래서 포르투 공항 전화번호를 찾아 직접 전화를 해봤는데 본인들 소관이 아니라며 항공사 번호를 알려줘서 열심히 받아적었는데, 그 번호로 전화를 걸려고 보니 아까 전화했던 바로 그번호.. ㅠ

새벽 창밖 풍경

더이상 당장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어 일단은 항공사 고객센터 이메일로 도움을 요청한 메일만 보낸채로 집을 나섰다. 집을 나와서 한 2분쯤 뒤에 내 핸드폰으로 포르투갈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느낌상 캐리어 관련 전화일 것 같아 받았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왠지 캐리어 배송 관련한 내용이었을 것 같고 이분하고 얘기만 잘되면 모든 상황이 해결될 것 같은데 서로 답답하기만 하다가 전화는 끊겼다. 이때부터 막막한 상황에 오히려 더 스트레스 받았던 것 같은데 우선 9시반에 렐루서점 입장 예약을 해논 상태라 근처 카페에 가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렐루서점은 상벤투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한번도 그쪽 길로는 안가서 그런지 한번도 지나가지 않은 골목 쪽에 있었다. 이날은 또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도 내렸다. 아직 예약시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고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미리 알아둔 나타 집으로 갔다. 여기는 앉는 곳이 없고 서서 먹을 수 있는 자리만 있어서 바로 꺼내 준 나타를 둘이서 하나씩 먹었다.

Manteigaria

헐... 대존맛.. 둘다 여태 걱정으로 죽상이었다가 나타먹고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때 이후로 나타를 여러번 사먹었지만 처음 사먹었던 따뜻한 이맛을 잊지 못한다. 진짜진짜 맛있었다!

기분이 살짝 회복되서 바로 옆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가 상황을 정리해봤다. 제일 확실한 방법은 아까 그 배달기사와 다시 통화를 해서 받는 시간을 정하던지 공항으로 찾으러 가겠다고 얘기를 하든지 해야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해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자동응답기가 전화를 받았다. 아마도 발신만 되고 수신은 안되는 번호인 듯 했다. 한번 더 절망을 맛보고 더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일단 렐루 서점 예약시간이 되어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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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15분~20분쯤 도착했을 때 9시반이 첫타임이라 그런지 아직 오픈을 안해서 이미 입장 대기줄이 꽤 길었다. 미리 예약을 안한 사람은 티켓 구매 줄을 따로 서서 티켓을 구매한 뒤에 입장 대기줄 맨 뒤로 가서 또 대기를 해야하는 듯 했다. 아 그리고 포르투에 2일동안 있으면서 한국인을 단 한명도 못봤는데. 여기서 한국인을 처음으로 봤다. 역시 한국인들 부지런해...

렐루서점은 해리포터를 집필할때 영감을 받아서 유명해진 서점인데 내부가 진짜 예쁘긴 했다. 입장료도 꽤 비쌌던 것 같은데 사진이라도 많이 찍자해서 다른 사람들 다 찍는 계단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이 날이 흐리긴 했지만 그래도 아침이라 창가로 들어오는 빛이 예뻤다. 입장 줄이 그렇게 길고 내부가 그렇게 넓지도 않은데 신기하게 사진을 못찍을 정도로 붐비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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렐루 서점에 나와서 바로 앞에 있는 카르모 성당에도 가봤다. 여기는 저 파란 아줄레주 장식의 외관이 유명한 곳인데, 내부도 입장료를 내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포르투갈에서 성당을 몇개 가봤는데 나는 왠지 성당에 있는 오래된 동상같은 것들이 좀 무섭다. 사진에는 없지만 무덤이랑 해골이랑 미라 같은 것들도 있어서 더 으스스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아침이라 그런지 거의 관광객이 없어서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내부 구경하는 게 꽤 재밌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때쯤 이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에어비앤비 호스트한테 캐리어 배송 관련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에어비앤비 메시지로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내두었다.

오늘은 렐루서점 외에는 딱히 계획이 없었는데 새로운 골목을 발견한 김에 안가본 거리를 좀 더 걸어다니면서 구경해보기로 했다. 능길이는 에어비앤비에서 묵는 김에 현지 마트에서 장봐서 요리하는 걸 꼭 해보고 싶어했는데, 숙소가 관광지 쪽이다보니 숙소 근처에는 작은 규모의 슈퍼같은 마트만 많이 있었고 고기를 사려면 정육점으로 가야했는데 일요일은 다 영업을 안했다. 그래서 살짝 포기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곳에서 구글맵을 켜니 조금만 더 걸어가면 꽤 커보이는 마트가 하나 있었다. 

froiz 마트 엄청 크다!

찾았다! 살짝 관광지에서 벗어나니 이 주변은 왠지 우리나라로 치면 오피스텔 상권? 인듯 했는데 정육 코너도 있고 과일 코너도 있는 꽤 큰 마트가 있었다. 심지어 마트 옆에 무료 화장실도 있어서 능길이가 잠깐 화장실 간 사이에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떻게 배달원이랑 연락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배달기사랑 직접 연락해 선택지를 줬고, 오늘 받는거면 집에서 직접 받는게 좋을 것 같아서 배송받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배달 기사가 오면 메시지 줄테니 그때 내려가서 받으면 된다고 하셨다. 진짜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었고 호스트한테 계속계속 감사인사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가벼워진 마음으로 마트에서 고기랑 와인이랑 이것저것 저녁에 먹을 것들을 사고 점심은 이 근방에서 한국인 후기가 제일 많은 해물탕집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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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pabento S.Bento

12시 오픈 예정이었는데 조금 일찍 도착했더니 벌써 문앞에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2층으로 안내 받았는데 여기는 여태까지 갔던 레스토랑 느낌이 아니라 오래된 가정집같은 따뜻한 분위기여서 실내가 너무 귀여웠다. 여기는 한국인들이 고향의 맛이라며 극찬한 해물탕이 유명해서 느글느글한 우리 속을 달래줄 수 있을까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많았는지 2층 테이블의 대부분이 한국인들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해물탕이 나왔는데... 

비주얼은 완전 짬뽕같은게 너무 맛있어보였는데 국물을 먹어보니 향긋하고 밍밍한 부대찌개 맛이 났다. 아마도 고수가 엄청 들어간 듯 ㅠㅠ 고수를 못먹는 우리는 여행 내내 고수 때문에 엄청 고생했다. 분명히 다른 한국사람들이 맛있다고 했었는데 전혀 기대한 맛은 아니었고 오히려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실망하고 나왔다.

장본 짐들도 있고 너무 새벽부터 일어나서 돌아다녔더니 피곤해서 나타를 사들고 집에가서 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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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rica 나타는 아침에 먹은 만테가리아 나타보다 크림이 조금 덜 달고 담백했다. 만테가리아 나타는 시나몬향이 강하고 묵직한 느낌? 내 취향은 분명히 fabrica 나타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만테가리아 나타가 더 강렬해서 그런지 지금 글쓰는 시점에서는 더 생각이 난다. 아무튼 6개를 포장했더니 저렇게 예쁜 상자에 담아줘서 뭔가 더 기분이 좋았다. 둘 다 디저트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얼마나 맛있었으면 6개 사온거를 하나만 더? 하다가 금방 다 먹어버렸다. 에어비앤비에서 웰컴드링크로 줬던 와인도 마저 다 마셨다.

잠시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금방 4시가 되었고 호스트에게서 배달기사님이 10분내외로 도착할 거라는 메시지를 주셨다. 얼른 내려가서 문앞에서 기다렸더니 배달기사님이 곧 오셨다.

뭔가 지쳐보이는 내 캐리어...

드디어 찾았다 내 캐리어 ㅠㅠ 뭔가 고생했던 내 마음과 비슷하게 너덜너덜해보이는 캐리어가 괜히 찡해보였다. 캐리어도 찾았겠다 신나서 옷갈아입고 고데기도 하고 야경보러 다시 외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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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역시 도우루강 야경 넘 예쁘다.. 날이 흐려도 이쁘다. 오늘은 도우루 강을 건너는 동루이스 다리 2층으로 건너가 보기로 했다. 2층으로 올라가려면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가거나 도보로 계단을 이용해서 올라가야 했는데 하필 그냥 야경보러 나온다고 현금이 든 지갑을 안들고 나왔는데 푸니쿨라는 카드가 안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걸어서 올라갔다. 꽤 높아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는 괜찮았다(그치만 두 번은 안갈듯). 2층에 올라가니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2층 다리는 상벤투 역쪽에서도 쭉 내려오면 바로 올 수 있는데 며칠 전에 산책하다가 와보고 너무 무서워서 못건너 갔었다. 그땐 평일이라 사람도 별로 없었는데 2층은 트램이 다니는 길이 있어서 여기로 걸어가도 되나 싶기도 했고 너무 으스스 했는데 주말에 오니까 또 다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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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가면 와이너리가 모여있는 빌라 노바 드 가이아 지역이 나온다. 여기는 길 건너편에서 봤을 땐 예뻤는데 날이 흐려서 그런지 그냥 그랬다. 이 쪽 지역에서 전망 포인트가 두 곳이 있는데 모루공원과 수도원에서 보는 석양이 그렇게 이쁘다고 해서 찾아서 가봤다. 우리가 집에서 너무 늦게 나오기도 했지만 어차피 날이 흐려서 석양은 못보고 야경이라도 보자는 마음으로 갔는데 음.. 생각보다 별로였다. 여기는 날 좋을 때 와야 예쁜 풍경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동루이스 다리 2층에서 본 도우루 강가풍경 넘 아기자기해 ㅠㅠ

강 건너기 전 우리 동네가 더 이뿌다. 사실 숙소 잡을 때 야경이나 풍경 위주로 많이 보려면 강 건너의 가이아 지역도 괜찮다는 얘기를 보고 그쪽에서도 찾아봤는데 마땅한 데가 없어서 지금의 숙소로 잡은 건데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야경 실컷 보고 숙소 돌아와서 아까 장봐 온 것들로 능길이가 저녁을 차려줬다. 직접 구운 스테이크와 냉동라자냐, 샐러드. 마트에서 처음보는 식재료들로 어떻게 뚝딱뚝딱 잘하는 지 신기하다. 고기는 우리가 평소 먹던 스테이크 부위랑 좀 다르긴 했지만 그래도 입맛에 맞는 음식을 오랜만에 먹으니 너무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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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아까 마트에서 '포르투갈에 그린와인이라는 것도 있다~ ' 라는 것만 알고 있었던 차에 그린와인이 보이길래 궁금해서 한번 아무거나 집어와봤다. 한입 먹었더니 뭔가 특이한 맛이 나길래 갑자기 그린 와인이 궁금해서 찾아봤다. 포르투갈에서 '비뉴(와인) 베르드(초록색)'라고 불리는 그린와인은 초록색 와인이어서가 아니라 와인을 만들 때 사용하는 포도가 덜 익은 어린 품종으로 만든 덜 숙성된 와인을 뜻하기도 하고, 이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이 사계절 내내 푸르다고 해서 지역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했다. 알고 먹으니 갑자기 더 맛있고 상큼했다. 이 날 먹어보고 종종 식당에서 시켜먹었는데 느글느글한 포르투갈 음식에 완전 소화제 같은 느낌이라 나는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와인이 되었다.

포르투에 오자마자 골칫덩어리였던 캐리어도 해결되고 이제 진짜 재밌게 여행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면서 이날도 와인에 취해 푹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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